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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빌2:9-11
강설날짜 2017-04-09

제 18항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4)

 

 

 

십자가의 사건을 어떻게 볼 것입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은 진정한 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가 강설을 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강설로 행2:23에서 이중의 설명을 합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예정으로 하나님께서 미리 작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신 대로 내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함으로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요약하라면 고난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낮아지심을 생각함으로 고난과 사랑의 삶으로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전6:6-8절을 보시면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고난을 지심으로 구원하여 주신 것을 은혜로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십자가의 극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육신으로 낮아지셨던 예수님은 이제 부활하심으로 높아지셨습니다. 여기서 높아졌다는 것은 신성이 아니라 인성입니다. 신성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높아졌다고 할 때는 인성이 높아지심을 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형벌적인 관계를 가지셔서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심으로 율법의 재정 자이신 예수님은 율법의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 전체를 수용하시고 마지막에는 율법의 저주까지 십자가에서 다 받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할 것을 지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율법이 지향하던 것을 모두 이루심으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의 완성임을 생각하십시오. 그로인해 율법에 대하여 의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고, 구원의 축복을 가지고 죄인들에게 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의로우신 분이신데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심으로 의로움을 또 취하셨고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전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영광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심으로 그가 가지고 계십니다. 빌2:9-11절을 보시면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것을 오해하여 3층천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늘에 있는 자’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 즉 천당에 있는 자들이고, ‘땅에 있는 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람이고, ‘땅 아래에 있는 자’는 지옥을 말합니다. 지옥은 불교에서 사용하던 것을 차용하여 쓴 것으로 영원한 형벌이 있는 곳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된 백성은 경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이를 모르므로 우리가 왜 그 분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를 삶으로 나타내야 한다. 복음의 증인 자가 된 것은 예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나의 공로를 자랑하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을 아는 백성은 오직 감사함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경배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지 공로의 대가를 바라보는 것은 가짜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공적인 일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3중적 의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루셨다고 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공적인 선언의 의의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모범이 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들이 신자들에게도 일어날 것을 상징적으로 말합니다. 그 예가 예수님처럼 부활하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영혼의 부활을 합니다. 영혼의 부활이라는 것은 중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회개하고 믿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중생한 백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성도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몸의 부활이 있기까지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죽어도 새 생명으로 영광 돌리는 것은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우리를 부활에 합하여 사는 것입니다.

 

다시 부활을 생각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활은 첫 열매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부활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잘 드러낸 것이 고전 15:42~44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우리의 부활체의 모습으로 썩지 않는 몸이고, 영광스러운 몸이고, 파워풀한 몸이고, 신령한 몸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몸을 더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44절에서 ‘육의 몸’이라고 하신 것을 보십시오. 현재 우리의 몸이지만 신령한 몸입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영으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고 살과 뼈가 있는 것입니다. 좀 어렵지만 영에 아주 적합하게 변화된 몸으로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건 후 예수님은 눅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성령님이 사용하시기에 전혀 지장이 없는 몸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고전 6:13절을 보시면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오해의 소지로 몸을 가지고 있으나 위장은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식사를 하심 즉 위장이 없으면 안되는 눅24:42절을 보시면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인 43절에서는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꼭 먹어야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보면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나, 현재 우리가 받는 제약을 뛰어 넘으셨습니다. 부활 후 우리는 몸을 가지고 살 것임을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배당 문을 잠갔지만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면서도 뛰어 넘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인 인성은 한국에는 있다고 할 때 미국에는 없는 것입니다.

 

부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롬6:4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1:1절에서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골2:12절은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롬 8:11절에서는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성자 예수님 당신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10:18절은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2:18-21절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부활한다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성부가 성령님이 그리고 예수님이 각각 했다고 하면 누가 부활시킨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나눠지지 않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바르게 증거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에 대한 반대 이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반박으로 ·마28:11-15절로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여기서 경비병은 파수꾼으로 로마 군인이 아니라 성전 수비대입니다. 성화에서도 로마 군인으로 그려 놓은 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무덤을 지키는 것이고 대제사장들에게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마27:62-66절입니다.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너희에게 이미 군대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반박하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기절설’입니다. 그렇지만 양편 강도는 뼈를 꺾었으나, 예수님은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뼈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피와 물이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고 실제적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기절한 예수님이 큰 돌을 굴리고 나왔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경비병이 파수꾼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빈 무덤·부활하신 주님을 모두 보지 못했지만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택함을 받은 백성의 신비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더욱 부활의 역사성·사실성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신앙생활에서 삶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계속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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