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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롬4:1-8
강설날짜 2017-06-11

제23항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2)

 

우리의 행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우리 죄의 용서에 있고, 다윗과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죄의 용서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다윗과 바울은 일할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해 선포합니다. 사도는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확고한 근거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어떤 것 혹은 우리의 공로로 주장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확신을 주며,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충분하므로, 우리는 두려워 떨면서 숨으려 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자신을 덮으려 했던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게 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우리 자신이나 혹은 다른 어떤 피조물들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진저!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오 하나님,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 마지막 부분에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3항의 첫 부분은 롬4:1-8절의 말씀을 잘 정리하여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약의 백성이든 신약의 백성이든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중요한 것은 모두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약에서 계명을 주신 것은 죄를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볼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인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들어서 사도 바울은 “다윗과 바울은 일할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해 선포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은 칭의에 대한 것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관점에서 선례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시조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설명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았다면 자신은 자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롬4:4-5절을 보시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바울은 만일 구원이 자랑할 수 있는 노동의 대가인 삯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주어진 믿음입니까? 우리도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아담과 같은 죄인인데 어떻게 은혜의 언약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타락한 죄인들과 다시 관계를 맺기 위해 구속과 화해의 수단을 어떻게 제공해 주셨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롬4:25절은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 방법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즉 칭의입니다. 조건이 없는 은혜로 ‘의롭다 하심’입니다.

 

창15:6절에서도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분명하게 말씀 하십니다. 그 믿음은 아브라함이 믿고 싶어서 믿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심으로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칭의’를 다루고 있는 현저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그의 몸에서 한 아들이 출생함으로 그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 질 것을 이야기 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창22:17절이 증거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비록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왜 입니까? 요8:56절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지는 공로적인 당신님의 의는 내가 하나님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함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내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23항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확고한 근거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어떤 것 혹은 우리의 공로로 주장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것이 됩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여기심으로 갈4:6절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칭의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0문답은 “칭의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이 칭의를 통해 하나님은 죄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받아들여 주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죄인들 안에 어떤 변화가 생겼거나, 죄인들이 어떤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순종과 완전한 배상 때문이며,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주실 때,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로 정의하여 주십니다. 그 누구도 자랑할 수 없도록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행위입니다. 엡2:8-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의 은혜는 행위의 산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나의 공로적인 그 어떤 행위적인 자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도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죄악 된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고, ‘칭의’의 은혜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성령님은 주권적인 섭리로 나를 거듭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요3: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님이 거듭나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모든 공로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고,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1:29절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난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칭의에 대한 것은 카톨릭과 다른 견해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은 트렌트 회의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만을 통해서 인간이 의롭게 된다는 것을 명백히 부인을 합니다. “만약 누군가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한다면 그에게 저주가 있으리라”고 함으로 기독교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세례를 통해 영혼의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칭의’의 시작이며 이것이 성품의 변화와 더불어 사랑과 선행을 통해 실천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카톨릭은 ‘칭의’의 완성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주입되어 인간의 내면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가 합성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여 보다 고급한 영성에 진입하게 되며 그 결과 도덕적인 갱신이 뚜렷하게 확인될 때 ‘칭의’에 이른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칭의’의 생각과 다른 것이고 그것은 ‘칭의’는 단번에 일어나는 법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본질에 참여하여 공로적인 행위의 구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3항 끝 부분은 “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확신을 주며,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충분하므로, 우리는 두려워 떨면서 숨으려 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자신을 덮으려 했던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게 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우리 자신이나 혹은 다른 어떤 피조물들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진저!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오 하나님,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4:6-8절에서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죄 용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칭의를 말하기 위해서 다윗을 이야기 합니다. 칭의는 죄 사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무죄선언을 하시는 것이 ‘칭의’입니다. 제23항에서 고백한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어떤 것 혹은 우리의 공로로 주장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 떨면서 숨으려 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자신을 덮으려 했던” 아담처럼 두려워 떨며 숨을 필요가 없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확신을 주며,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충분하므로, 우리는 두려워 떨면서 숨으려 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자신을 덮으려 했던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게 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고백하면서, 나의 어떤 공로적인 행위를 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성도의 교제를 하면서 교회를 세워가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순종하고 신뢰하면서 의지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에 대해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따라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교통을 소명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 받은 자들”이라고 도르트 신조에서 말하고, 웨스트민스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영접하는 자들이며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그의 성령을 통해 거룩하게 된 자”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3:16-17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칭의로 구원함을 얻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저번 주에도 보았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0문에서는 “어떻게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 그 대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됩니다. 이것은 비록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 여전히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나의 양심이 고소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와 의와 거룩을 그리스도의 완전히 만족하게 하심과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거저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오직 믿는 마음으로 이 선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는 말씀을 더욱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에게는 나의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오직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은혜이고, ‘칭의’는 오직 믿음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은혜에는 그 어떤 행위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굳건하고 확실한 지식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근거하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지성에 계시되었고 우리의 마음에 인쳐졌다.” 칼빈에게 있어서 믿음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인쳐진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뢰입니다. 성령님과 인격적 신뢰를 하듯이 교회에서도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으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워갈 때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빌3:7-9절을 보시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말씀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교회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입니다. 성도는 죄로부터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하신 예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은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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