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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7-04-23

제20항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순종이 범해진 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 동일한 본성을 만족하게 하시며, 가장 지독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님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아들에게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게 하실 때 당신님의 아들에 대한 당신의 공의를 나타내시고, 죄를 범하여 정죄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당신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안전한 사랑으로 당신님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도록 내어주시고,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 분을 통하여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프랑스신앙고백서를 보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길 원한 프랑스인들은 1559년에 한 마음으로 이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다”고 기록을 함으로 힘든 시대에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잘 드러낸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저자인 귀도 드 브레도 엄청난 투쟁의 상황 가운데서 기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감옥에 갇혔고 결국 신앙고백을 믿음으로 고백함으로 목 베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성경의 진리 즉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성도에게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사명으로 생각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늘 성경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늘 성경을 읽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을 했던 선배님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성경의 진리를 가르침에 충실했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을 보면 진정 하나님의 영광의 생활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죄와 비참함 가운데서 스스로를 파멸로 내던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친히 찾아오셔서 위로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실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낮은 자의 모습으로 종말의 시대를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20항에서는 “완전히 자비로우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입니까?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찾아오시고 사탄의 편에서 당신님의 나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다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입니다. 자비와 반대로 공의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 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공의로우신 분”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주셨음을 공의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까? 주위 교회에서 하는 강설(설교)을 들어 보십시오. 자비로우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강설은 많아도 공의로우신 심판자의 강설은 많이 합니까? 이렇게 오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신약에서는 자비로운신 하나님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더한 것은 신약의 하나님만 인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언제부터 있었던 것입니까? 초대교회 때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자, 진노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신약에서는 자비의 하나님으로 가르쳤던 “마르시온” 이단이 있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만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심으로 공의로 다스리시고, 동시에 죄인을 구원하여 주심으로 나를,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순종이 범해진 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 동일한 본성을 만족하게 하시며, 가장 지독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님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아들에게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게 하실 때 당신님의 아들에 대한 당신의 공의를 나타내시고, 죄를 범하여 정죄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당신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안전한 사랑으로 당신님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도록 내어주시고,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 분을 통하여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롬3:25-26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입니까?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율법의 저주를 독생자 예수님에게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롬3: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여기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를 직역하면 “이제는 그러나 율법 밖에서(없이)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났다.” 즉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할 자가 없고 도리어 죄를 깨닫게 할 뿐이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 밖에서! 율법 없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또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이 그리스도에게 내려지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의로 삼아주셔서, 하나님의 공의도 실현되고, 우리도 의롭게 되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율법 밖에서의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공의가 먼저 충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당신님의 아들을 주셔서 공의와 자비를 증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아들에게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게 하실 때 당신님의 아들에 대한 당신의 공의를 나타내시고, 죄를 범하여 정죄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당신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0문답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순종과 반역을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를 원하십니까? 여기서는 공의와 속죄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질문인 것입니다. 답을 보시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 둘 다에 대해 심히 진노하시며 이것들을 정당한 심판에 의해 한시적이고도 영원히 처벌하기를 원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갈3:10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법에 대한 불순종을 형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요리문답 11문답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자비롭지 않으십니까? 답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하지만 의로우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최고 위험을 거스르는 죄 역시 최고의 형벌로 즉 몸과 영혼에 내리는 영원한 형벌로 처벌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가 충족되기를 요구하는 것이고, 우리는 당신님의 공의에 따라 형벌을 받아야하므로 우리가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당신님의 은총과 은혜의 선물을 받은 피조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어떤 피조물이 할 수 없는 것을 독생자 예수님에게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가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님께 쏟아 부어져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것은 오직 은혜로운 것으로, 공의와 자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후 제20항 뒷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안전한 사랑으로 당신님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도록 내어주시고,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 분을 통하여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마르시온’처럼 자비의 하나님만 인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늘 한결같은 것이고 서로 충돌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만 인정하고 공의를 제거해 버린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을 예로 든다면 사랑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부모님의 사랑에는 작은 공의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허락을 하셨습니다. 대체적으로 부활절만 되면 잘 인용되는 말씀을 아실 것입니다. 사53:5-6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아들에게 우리의 죄를 감당하게 하심으로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신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은 감당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잡아 나의 죄를 대신 희생하게 하는 제사를 했습니다. 양을 사용하여 제사를 하는 사람이 양의 머리에 안수를 하도록 한 이유가 있습니다. 레1:4절을 보시면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짐승을 예물로 드리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분명히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공의와 자비는 나를 구원의 확신을 더욱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시103:8-11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하나님의 자비는 위대하시면 공의로우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자유함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값 주고 사신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당신님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러 주셨고 사탄의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신 것이 선물 중에 선물입니다.

 

도르트 신경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자비로우실 뿐만 아니라, 또한 지극히 공의로우시다. 그리고 그의 말씀에서 계시한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당신님의 무한하신 위엄에 대항하여 저지를 우리의 범죄가 이 세대뿐만 아니라 오는 세대에도 몸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을 요구한다. 속죄가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형벌들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 속죄를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긍휼로 우리의 보증인으로 당신님의 독생자를 주셨다. 이는 우리를 위하여 또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가 죄로 삼으신바 되고, 십자가 위에서 저주를 받은바 되셨는데, 이는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원칙을 반드시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갚을 수 없어서 비참하게 된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값없이 일만달란트를 탕감해주셨습니다. 어떻게 탕감해주셨습니까? 이 무한한 죄책을 자기 아들로 하여금 대신 지불하게 하여서 탕감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단번의 죽음으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 단번의 죽음으로 모든 인생들의 무한한 지옥형벌을 다 갚아내야 하기 때문에, 벨기에 신앙고백서 표현대로 “가장 지독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님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는 것입니다. 그냥 교수형에 처해진 것이 아닙니다. 목을 맨다든지, 목을 자른다든지, 전기에 감전시켜 죽인다든지 하는 것은 다 사형수의 인권을 고려한 처형방법입니다. 짧은 시간동안만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하는 편한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이렇게 곱게 죽을 사형수의 인권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는 가장 잔인한 처형방법입니다. 고문하고, 때리고, 옷을 벗겨서 나무에 매달아 수치를 당하게 하고, 엄청난 고통과 수치 속에서 햇빛과 추위 속에서 서서히 말려 죽도록 하는 것이 십자가 처형입니다. 참으로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잔인한 처형이었습니다. 오직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얻은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순종의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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