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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제30항 교회의 영적인 질서 / 교회의 정치(직분자에 대하여....)

 

우리는 이 참된 교회가 우리 주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가르치신 영적인 질서(정치)를 따라서 통치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할 목사가 있어야 하며 또한 목사와 함께 교회의 치리회를 구성할 장로와 집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참된 종교를 보존하되, 참된 교훈이 전파되고 악한 자들이 영적인 방식으로 징계를 받고 억제되며, 가난하고 고난을 당하는 모든 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도움과 위로를 얻도록 살핍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명한 규칙에 따라서 충성된 자들이 선출될 때 이런 방식으로 모든 일 하나 하나는 바르게 선한 질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귀도 드 브레는 첫 시작을 “우리는 이 참된 교회”라고 함으로 지팡이교회가 제27-29항에서 다룬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우리 주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가르치신 영적인 질서를 따라서 통치되어야 함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몸 된 머리로 인정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목사, 장로, 집사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을 제30-32항까지 교회가 어떻게 그 기능을 사용하고 다스려져야 할 것인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한 시대인 것처럼 종교개혁의 시대에도 더욱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직분에 관한 즉 목사, 장로, 집사를 세우심으로 교회의 정치를 통해 당신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다스리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국가를 보아도 진보와 보수도 있고, 지역마다 각각의 특색과 성향이 있습니다. 교회도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아볼라, 베드로, 사도 바울 등과 같은 파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지팡이교회이든 주위의 어느 교회이든 성도는 그 교회 회원들의 개인적인 소망에 따라 다스려져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의 국가가 다스리는 방식인 민주주의, 왕권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분들이 다스리는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택정하여 부르심을 입은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결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정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정치를 하시기 위해서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직분자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정치의 조직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해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직분자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직분자를 세우심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주신 교회 정치의 선물은 순전한 성경을 전수하고, 악덕을 개혁하고 억제하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거룩한 모임에서 누구나 경건의 훈련을 하도록 하심으로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도록 하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면 벨기에 신앙고백서에서 교회는 어떤 종류의 정치로 다스려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가르치신 영적인 질서(정치)를 따라서 통치”되어야 한다고 고백을 하고 믿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영적인 질서’의 의미는 헬라어에서 ‘다스리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질서와 정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당신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영적인 질서로 다스리도록 세우신 직분자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에서도 영적인 질서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할 목사가 있어야 하며 또한 목사와 함께 교회의 치리회를 구성할 장로와 집사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엡4:7-8절을 보시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예수님의 교회의 머리로서 당신님의 교회를 다스릴 수 있도록 직분을 세우신 선물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선물로 주신 것에 대해서 엡4:11-12절에서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심으로 목사는 잘 가르치는 교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목사와 교사라고 되어 있지만 원어로는 목사 즉 교사입니다. 왜 목사를 세우신 것입니까? 당신님의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도록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맡은 자의 충성은 교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후4:2절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이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 교회의 존립이 달려 있습니다. 말씀이 강설되어야지만 신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힘을 공급 받을 수 있고, 예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으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씀을 혼잡케 하며 온갖 잘못된 해석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해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단 마귀는 세상 끝 날까지 그런 거짓선지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해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제29항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말씀의 강설과 성례 그리고 권징(기도)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목사는 강설과 성례를 바르게 가르침으로 영적인 질서로 잘 다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자가 강설하고 성례를 집례하면, 온 교회로 자기 죄를 먹고 마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노회에서 “이 사람은 참으로 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있고, 바른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교회를 지도하기에 합당한 참된 목자다.”하고 인준하고 목사 안수를 준 사람만 성례를 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만 세우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에는 세 직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 직분이 교회의 통상적인 직분이고 항존직입니다. 당연히 초대교회 그리고 그 후 2세기까지 세 직분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분은 세상의 권력처럼 변질됨으로 인간의 교만과 명예욕으로 인하여 군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세 직분을 다시 세웠습니다. 칼빈은 제제바에서 장로 직분을 도입하는데 귀족으로부터 많은 저항을 받았습니다. 장로가 각 가정의 심방을 하는 것은 각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칼빈은 딛1:7절의 말씀을 사도적인 명령으로 알고 다시 회복시킵니다. 그 말씀은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감독은 장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행20:17, 28절, 빌1:1절, 딛1:5,7절은 같은 직분을 가리키는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목회자만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장로도 같은 동역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행20:28절에서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고 하심으로 에베소 장로들에게 감독자요 장로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의 중요한 책임은 목회자가 가르치는 교리가 참된 교리인지 아닌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 가운데 혹시 이단적인 가르침들이 나돌고 있지는 않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와 더불어 악한 자들을 권징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잘못된 가르침에 혼돈 속에서 의인의 길을 따라 오지 않고 악인의 길을 따라 갈 것입니다.

 

성경에서 목사도 장로 즉 감독 안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회라고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순절에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에 장로 직분을 세워졌다는 것을 아십니까? 행11:30절을 보시면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그러면서 각 지역에 교회가 성장하면서 행14:23절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게 함으로 사도들은 장로를 세우게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것처럼 교회를 다스리고 감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사도들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차츰 사라지면서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더욱 말씀의 사역자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장로들 가운데에서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분들이 생기면서 교회는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로 구별되어 지게 됩니다. 그 증거가 딤전5:17절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그러면서 점점 더 장로를 구별하여 엡4:11절에서 목사 즉 교사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장로 안에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의 사역에서 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적인 질서 즉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정치가 아니라 다스리는 것으로 성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목사의 강조점은 교회를 위해 말씀으로 순종하여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장로의 강조점은 전하여진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보살피고 돌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집사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행6:1-6절을 보시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즉 신약의 집사들은 원래 구제를 위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그들은 참된 종교를 보존하되, 참된 교훈이 전파되고 악한 자들이 영적인 방식으로 징계를 받고 억제되며, 가난하고 고난을 당하는 모든 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도움과 위로를 얻도록 살핍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집사들은 영적인 질서를 위해서 공동체 사이에서 섬겨야 하는 봉사직입니다. 성도로부터 임명을 받은 봉사자는 부지런히 서로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집사는 구제하는 일을 감당하도록 함으로 ‘가난하고 고난을 당하는 모든 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도움과 위로’로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제만 하면 집사의 직분을 다한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집사는 기본적으로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계속해서 세워져가기 위해서는 구제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교회의 전반적인 살림을 맡아서 감당해줄 집사들이 있어야지만 목회자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벨기에 신앙고백서 마지막에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명한 규칙에 따라서 충성된 자들이 선출될 때 이런 방식으로 모든 일 하나 하나는 바르게 선한 질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함으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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