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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4-22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8문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은 제18문을 통하여 타락의 결과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타락은 인간의 비참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제18문은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해 들어간 상태의 죄악됨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이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죄에 대한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이 타락해 들어간 상태의 죄악됨은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 원리의 상실, 사람의 전 속성의 부패에 있는데 보통 원죄라고 불리고, 이 원죄로부터 나오는 모든 실제의 범죄들에 있습니다.” 좀 길게 설명을 했지만 이것을 요약하면 사람의 원죄의 본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전인격의 부패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하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에서 원죄의 상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죄의 책임은 죄책감과 다르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범죄에 대한 죄책으로 근본적인 의로움이 결핍된 것입니다. 사람의 전인격적인 성품이 부패한 결과입니다. 그 원죄로 인하여 모든 범죄 행위들이 비롯되어 뒤따르는 것입니다. 윈죄로 말미암아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 범하는 것을 본죄 즉 자범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리문답에서는 ‘이 원죄로부터 나오는 모든 실제의 범죄들에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였을 때는 아무런 흠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죄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아주 바른 성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행위언약 즉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흠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흠이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롬5: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심으로 이 세상에 출생한 후 원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남으로 그 후에 본죄 즉 자범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즉 법정에서 당신은 유죄라고 하면 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인류의 조상이 죄를 범함으로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책을 갖고 있습니다. 타락은 이처럼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신뢰의 관계였던 모든 것이 단절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사단에 매인 종이였고, 현세와 내세에서도 모두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6장 6항에서는 “원죄이든 자범죄이든 간에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을 위반한 것이며, 그것에 반대되기 때문에 죄는 본질적으로 죄인에게 죄책을 가져오고 죄인은 그것에 의해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 아래 매이게 된다. 그 결과 영적인 비참과 현세뿐 아니라 영원한 모든 비참을 동반하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이 원죄를 가지고 죄 중에 출생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대의 사람들은 진리와 실재를 그들의 감정에 따라 결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좋게 느끼면 그것은 선한 것이라고 합니다. 잘못된 어떤 것을 옳은 것으로 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죄를 가지고 있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원죄로 마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드워즈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8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자들은 초자연적인 것, 속죄, 원죄, 하나님의 진노 등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에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와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죽음”과 함께 교회가 더 이상, 과학, 경제, 문명 등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질서 있는 교육, 전문적 지식과 기술 등이 증가하면 할수록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죽었으니 인간은 더 이상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더욱 타락되어 가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고 질병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완고하고 강퍅함으로 귀와 마음이 죄로 인해 큰 가책을 느끼지 못하도록 양심의 소리를 억누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으로부터 배우기도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성품이 부패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어떤가 합니다. 먼저 깨끗한 물을 컵 안이 잘 보이는 컵에 따라 보십시오.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담의 순수한 상태 즉 원죄를 짓지 아니한 상태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후 검은 잉크 몇 방울 떨어뜨려 보십시오. 어떻게 색깔이 변합니까? 물과 함께 검게 변함으로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컵 안에 더 많은 잉크를 넣으면 검은 색이 진해집니다. 인간의 부패한 본성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더욱 악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왜 인간이 더 악해지지 않는 것입니까? 인간의 노력 때문입니까? 악을 억제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람이 사단처럼 악해지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사람에게 양심의 활동을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양심으로 선을 행함으로 선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롬2:15절을 보시면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의 양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음으로 자신의 행위 가운데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인지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양심의 증언이 언제나 완벽한 도덕적 지침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잘못을 변명하며 자신의 도덕적 행위에 대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언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에 충분하다는 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2:15절에서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의 오심으로 참된 구원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즉 죽음을 두려워하고, 종 노릇하는 자들에게는 소망과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한 것입니다.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구원자로 믿는 길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인간이 더 악해지지 않는 것은 통치자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롬13:1-5절에서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세상에서 악한 자들을 징벌하시기 위해서 통치자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 즉 통치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때때로 하나님은 선한 권세로 복을 주시며, 때때로 악한 통치자들을 시험이나 심판의 수단으로 세우시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사람이 죄가 없다면 질병과 전쟁, 기근, 죽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죄를 가지고 있음으로 사람은 저주 아래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통과해서 주님의 재림에 들어갈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 날은 주님의 재림의 날 하나님 날에서 혼인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신앙의 도리를 다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죄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은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관련하여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입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거룩하다고 하지만 원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창8:21절은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즉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안 후 롬3:12절에서는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입니다. 유대인들이 믿고 의지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일침을 가하십니다. 마23:25-28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인 사람이 스스로의 회개하여 거듭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인간 스스로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악용하여 잘못된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거짓된 것으로 부흥을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왜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참된 행복입니다. 사람이 본성에 머무는 한, 그는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인간의 본죄 즉 자범죄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범죄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스스로 직접 죄를 짓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멀어진 인간의 성품은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질문하여 보십시오. 당신은 온전하게 생활하고 있으면,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자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태가 정상적이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우고, 교육을 통해서 고쳐 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문에서는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라고 할 때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여 주고 있습니다.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도록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심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죄를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사형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죄에 대해 듣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인정하고 참된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이 무엇입니까? 기억하실 것을 믿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당신님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부르시고, 교회를 통해 사람을 부르셨지만 듣기 싫어하였고 손을 펼지라도 어떠합니까? 그럴 때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는 우리는 시126:5-6절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입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히5:7절에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갈멜산의 기도는 승리의 영광으로 땀이 피 방울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로 당신님의 백성들이 져야 하는 죄를 대신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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