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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3문

 

오늘은 제93문을 통해 “신약의 성례는 무엇입니까?”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소요리문답을 통해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배웠기 때문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답은 간략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깊습니다.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정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례를 두고 교회 역사를 보면 잘못된 지도자들에 의해 퇴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만 그렇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도 같은 현실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자세입니다. 오늘날 성례를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 행해지는 성례는 어떠합니까? 이단들이 행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단만 아니면 교회에서 하는 성례는 ‘바른 것인가?’입니다. 일부 교회이지만 미신적이고 주술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례에 참여하는 신자들도 주술적이고, 미신적일 수 있습니다. 성례에 대한 규례를 몰라서 곁눈질로 보고 하다 보니 참된 의미를 모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이 성경의 의미대로 개혁하지 않았다면 오늘날도 같은 성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례에 세례와 성찬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같은 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친절하게도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176문은 “세례와 성찬은 어떠한 점에서 일치하는가?” 서로 같은 점입니다. “세례와 성찬이 일치하는 것은 두 가지다. 창시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점과 양자의 영적 구분이 그리스도와 그의 혜택이라는 점, 양자가 다 같은 언약의 인치심이라는 점, 양자가 다 복음의 사역자 곧 목사에 의해서 시행되며 그 밖의 누구에 의해서도 시행될 수 없다는 점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계속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입니다. 177문은 서로 다른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의 성례가 다른 것은 세례는 우리의 거듭남과 그리스도께서 접붙임 됨의 표와 보증으로 물로 시행되며 심지어 어린아이에게까지 단 한 번만 시행되는 반면에 성찬은 떡과 포도주로 자주 시행되며 영혼의 신령한 양식이 되는 그리스도를 표시하고 나타내며 우리가 그 안에 계속하여 거하고 자라남을 확인하기 위함인데, 자신을 검토할 수 있는 연령과 능력에 이른 사람에게만 시행되는 점에서 다르다”입니다. 이런 점을 명심하면서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왜 종교개혁가들 그리고 후예들은 성례를 중요시 한 것입니까? 카톨릭은 “혼인성사(성례)”라고 하여 혼인식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더 있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칠성례) 그들은 혼인이 성례이기에 꼭 누가 주례를 해야 합니까? 일반인이 아니라 신부 또는 성직자가 해야 합니다. 성경을 잘 읽어 보시면 결혼은 성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결혼식도 성례라고 제정하여 주신 기록이 없습니다. 결혼은 중요하기 때문에 목사가 하면 좋습니다. 결혼식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두 분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가르치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신격화시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성례는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위해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세례와 성찬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어(글과 말)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청중은 강설자가 낭독하거나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습니다. 이에 비해 성례는 눈으로 봅니다. 그래서 보이는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세례는 더러움이 물로 씻기듯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기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찬의 떡은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는 떡과 포도주를 두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면 주님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의 의미를 생생하게 깨닫습니다. 이것을 통해 연약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각종 제사와 할례 그리고 유월절 등으로 신약시대보다 더 많고 더 화려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았던 것입니다. 유대인이 자신의 죄책과 오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볼 수 있게 하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신약의 성례를 통해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성례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해야 바른 믿음을 소유한 교회입니다. 성례는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받아야 할 것, 곧 믿는 사람이 마땅히 시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런데 의무 이기는 의무인데, 하나님께서 그 성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풍성하게 주시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그 성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보이는 표로써 성례를 통해 형상화해서 아주 생생하게 나타내고, 우리에게 인을 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증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례는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다’하고 확증을 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례는 참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히 하고자 노력합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것을 따르면서 교회는 복음을 순수하게 전합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순수하게 집행합니다. 성례에 참여할 때 자신을 분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살피지 못함으로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주님께서 성례를 제정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욱 신중하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주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세상 끝날까지 행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배웠듯이 마태복음 28:18-20절에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곧 그 권위로 행한다고 번역했습니다. 대부분 한국 교회에서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친히 하실 때는 ‘이름 안으로’(in the name)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름 안으로’라는 말은 연합한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 안에는 삼위 하나님의 권위로 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베푼다”고 할 때에는 연합시킨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라는 것은 삼위 하나님과 연합한다는 뜻이 가장 강한 것입니다.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이것을 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례를 통해 은혜의 수단을 주셨습니다. 은혜의 수단의 중심 내용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성례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례는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 없이 성례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구원을 받은 자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성경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늘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끼치는 새 언약, 신약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례는 특별히 감각적인 표현으로써, 곧 볼 수 있는 물질로써 믿는 자에게 표시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일반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말씀 이외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은혜의 방도가 성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들어서 생각하고 깨달아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례는 감각적인 방법, 곧 만지고 볼 수 있는 물과 떡과 포도주라는 물질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독특한 점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이 생기고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해 주는 요소들이 말씀과 기도와 성례이고 그중에서 우리는 성례에 대하여 배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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