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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2:6-9
강설날짜 2023-05-21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ENPhVbBW-8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전2:6-9)

 

주 안에서 새로운 예배당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성도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면 무결점 아닙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 대한 강설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주님의 재림 때까지 교회 안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 때까지는 온전하고 무결점인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삶으로 영적 섬김의 예배를 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주의 길을 나그네와 같이 생활하는 성도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 그리고 소요리문답을 사용하여 성도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믿음의 선배님들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첫 질문으로 사람의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의 노예로, 권력을 붙잡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어떠한 생각을 하십니까? 이런 고민이 있는 분들을 위해 믿음의 선배님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아주 간략한 문장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생활하고 있다는 신앙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로교의 신앙고백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소요리문답을 배웠기 때문에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저도 삶이 지치고 상함으로 교회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도록 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있기에 삶이 나를 속이고자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영적 섬김의 예배를 합니다.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교회는 특별한 시간에만 하나님께 영광이고 그 외 시간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합당한 삶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와 보호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심으로써 자신을 영화롭게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령에 따라 하나님을 위한 영화로운 삶을 위해 전신 갑주를 입은 군인처럼 그리고 거룩한 신부처럼 생활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로 초대하시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믿음의 선배님들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생활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고전2:1-5절 말씀을 사용하여 “사도 바울이 무엇을 전하기를 원했는가?”를 강설로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요약한 후 오늘 말씀을 강설로 듣겠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를 주시며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무엇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이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전하는 번영신학입니까? 주님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믿음의 선배님들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심으로써 자신을 영화롭게 하도록 명령하셨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랑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생각했지만, 오직 자랑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자랑하며 영화로운 삶과 명령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습니다. 나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자랑하기를 원하십니까? 돈과 권력 아니면 자동차 등입니까? 사도 바울에게는 오직 십자가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할 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학문과 지혜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 복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 복음이 전해짐으로 교회가 세워졌지만, 신자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지혜로 인해 고린도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지 말며 오직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주의 길을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근거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은혜받았습니까? 그 은혜는 나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자랑하지 말며 주의 길을 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강설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성도라면 고린도 교회처럼 분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화로운 생활과 명령을 따라가는 성도면 당연히 분쟁이 없어야 합니다. 분쟁이 있는 교회는 고린도 전서를 차분하게 읽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자신을 잘난 척 자랑하는 것은 참된 성도가 아닙니다. 세상의 지혜로 자신을 자랑하면 결국 가라지입니다. 가라지는 알곡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른 신앙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돌이켜야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지혜이신 성령으로 돌이킬 수 있도록 전했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예배당에 모여 고백이 있는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인해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감사만 있는 예배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다른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자랑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사람의 지혜의 부당성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6절을 보시면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입니다. 그동안 사도 바울이 사용한 타락한 사람의 부정적인 지혜였지만, 오늘 본문의 지혜는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은 성도의 지혜입니다. 아덴과 고린도 지역은 학문의 도시였기 때문에 사람의 지혜와 철학 등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런 지역에서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은 세상의 지혜와 철학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도 세상의 지혜와 철학으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성경이 바로 지혜이며 철학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신 특별한 성경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와 다른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은 7절에서 오랫동안 감추었던 것이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입니다. 감추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정하신 것입니다. 그 비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죄로 타락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인자하신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혜가 무엇인지 알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은혜입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지혜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편에서 행위와 지혜 등으로 구원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로 구원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은 하나님의 지혜로 만세 전에 정하신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셨습니다. 사람 쪽에서 자기를 내세우며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셨으며 이런 구원을 알 수 있도록 성령께서 사역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영광에 교회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상 사람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호6: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많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정작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르게 알지 못했습니다. 제사를 많이 하면 축복해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런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또한 바른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가를 바르게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며 예배하는 교회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인애를 세상에서 삶으로 영적 섬김의 예배를(생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산상수훈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며 타락한 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날 교회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만들어진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 낸 가짜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단과 사이비 그리고 거짓 목사들이 만들어 낸 가짜 예수를 통해 장사합니다. 이런 시대에 분별력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지팡이 교회는 분별력이 있는 교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통해 십자가의 은혜를 알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무지와 무분별한 생각으로 자신이 최고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부와 행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을 수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8절에서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예수님에게 최고로 적용할 수 있는 호칭인 “영광의 주”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사용함으로 고린도 교회는 분쟁에서 돌이키라는 것이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처럼 오늘날 타락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지 못함으로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가 알도록 하십니다. 교회는 알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은 사람이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만큼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하게 알 수 있는 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주의 길을 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으로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은총을 위해 사도 바울을 통해 전하도록 하신 것이 있습니다. 9절을 보시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신 사역이 무엇입니까? 타락한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며 눈으로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귀로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합니다.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사도 바울은 사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헌신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14:9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신비 중의 신비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입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잘난척하는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누가 잘난 척할 수 있습니까? 그 누구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라도 베드로라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복음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람을 죽이는 자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만세 전에 구원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에 다메섹에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체험을 한 후 영광의 주를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가 된 바울은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 어떤 장소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교회가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기 위해 자기 몸까지 아끼지 아니하며 고난의 길을 감당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일부 목회자의 설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단과 사이비는 말씀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사람을 유혹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생활하고 있던 하와를 유혹하듯이 말씀을 전합니다. 이렇게 전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로 전하는 유사 복음이요 거짓 복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세상의 지혜로 전해지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교회의 정체성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결국 교회를 무너지도록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십자가를 알도록 하심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부활을 믿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총을 알도록 하십니다. 이런 것을 알면 이 세상을 위한 부귀영화는 하나같이 쓸데없고 허무한 것으로만 보이게 됩니다. 마귀는 사람의 약점을 잘 알기에 부귀영화를 위한 삶으로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사람의 지혜를 이용하여 세상의 것을 따라가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 지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십자가를 알고 있는 교회입니다.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허무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며 몸과 영혼의 부활을 믿는 성도입니다. 과거에는 죄인의 병기였지만 이제는 교회를 세워가는 일꾼 아닙니까? 교회는 헛된 세상의 부귀영화에 마음을 두지 말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는 교회는 과연 교회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 안에서 열매를 맺으며 주의 길을 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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