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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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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6:12-20
강설날짜 2023-08-13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qCiO575oWns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돌리라(고전6:12-20)

 

지팡이 교회가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된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우리를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독생자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비어 종의 형체 즉 성육신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는 그때부터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 복종하셔야 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한 구원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육신으로 오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배고픔과 멸시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 등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받으시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하신 히브리서의 저자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는 말씀처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삶으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영광된 삶으로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살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인생에서 세상 사람의 세계관으로 생활하면 안 됩니다. 오로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세계관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과 연결됨으로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요약하며 오늘 말씀과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은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부르며 사명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법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생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의 법으로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법으로 교회는 통치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독특하게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 존재하며 이 세상에서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교회법이 아닌 세상 법정에서 사건을 다루고자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했지만 “서로 고발”하며 교만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고린도 교회와 같은 현실에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있다면 사도 바울의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심판할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도 보좌에 앉아 심판할 것도 알려 주셨습니다.

 

하여튼, 교회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분별하고 판단하며 서로 고발하는 일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6장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고린도 교회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하십니다.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것보다 “속는 것이 낫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가 성품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도 바울의 권면으로 생각됩니다. 이 세상의 교회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라지와 알곡이 있습니다. 가리지는 알곡처럼 교회에서 활동합니다. 가라지는 교회에서 불의를 행하며 속입니다. 그리고 “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라지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안에서 거룩함과 의롭다고 함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세상의 법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독립된 기관으로서 존재하며 성경의 말씀에 따라 통치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로서 존재하는 힘이 있습니다.

 

교회는 “서로 고발”하지 말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적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돌리라”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마땅합니다. 교회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신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잘 판단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으니 몸은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누구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주어진 자유는 자신이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신분에서 자유롭게 한 것을 알도록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일을 다 가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다음으로 말씀한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는 고린도 교회처럼 서로 다투며 세상 법정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은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이기에 이 세상의 가치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을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 몸을 위한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생활하는 자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절제 있는 삶을 생활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 즉 우리의 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알도록 합니다. 13절을 보시면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당시에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격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음식을 먹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위해 하라고 합니까? 당연히 주님입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음란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지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몸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은 자기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타락한 사람은 세상의 즐거움이 좋아서 자기 몸을 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으므로 자기를 위해 몸을 쓰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누구를 위해 몸을 주셨습니까? 바로 우리 즉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 교회는 마음대로 삶을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도록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속량해 주심으로 인해 우리는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도록 했습니다. 성령이 거하도록 하심으로 교회가 성결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부활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주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속량해 주심으로 우리는 몸과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복음이 무엇인지 전해야 합니다. 롬8:11절을 보시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입니다. 비록 불신자나 불의를 행하는 자보다 가진 것이 없고 비천하게 보일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부활의 약속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활의 약속이 있는 고린도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은 성결한 삶이 될 수 있도록 합니다. 교회가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15절에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지 알지 못하느냐”하고 하십니다.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의 한 부분임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활할 수 있는 생명의 참여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교회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된 교회가 어떻게 창녀와 같은 몸이 될 수 있느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생활하는 교회가 어떻게 창녀와 같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 지역의 신전은 창녀와 같았습니다. 신을 즐겁게 하려고 신전에서 창녀와 같은 행위를 했습니다. 과연 이런 행위가 좋은 행동입니까? 교회는 가짜 신을 섬기는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녀와 같은 행위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교회는 순결을 지키는 신부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교회는 신부와 같은 마음으로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16절 말씀을 사용하여 더 심각하게 이야기합니다.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입니다. 15절과 다르게 16절에서는 창녀와 하나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녀와 한 몸이 된 지체라고 합니다. 창녀와 합하는 자는 외모로 자기를 잘 꾸며도 창녀의 인격입니다. 이런 자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생명으로부터 분리라는 것은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창녀와 같은 교회가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녀에 관한 이야기에서 몸만 주님과 연합된 것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타락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만 알 수 있는 신비입니다. 17절을 보시면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입니다. 육체의 이야기에서 이제는 영의 연합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신비롭게 하나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타락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며 영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비로운 연합이 된 성도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삶 속에서 영광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교회는 창녀와 다르게 최상의 신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영의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명령형을 사용합니다. 18절을 보시면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입니다. 그 명령은 무엇입니까? “음행을 피하라”입니다. 음행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넘어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음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의 몸을 향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명령하며 지속해서 음행을 피하도록 합니다. 음행을 피해야 할 이유를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음행은 영과 몸을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더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고전7장부터 10장까지의 서론입니다. 서론답게 사도 바울은 19절과 20절에서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먼저 19절을 보시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만 아니라 몸까지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세상의 지혜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자기의 몸으로 죄를 짓습니다. 다른 죄는 외적이지만, 음행은 내적입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적합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결코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벌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할 수 없는 형벌입니다. 성전의 소유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성전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성전도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순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한 도구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심으로 우리는 거룩한 삶을 생활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고 성도의 몸 안에서 편히 쉬지 않습니다. 오히려 능력으로 일하시며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며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연약한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연약한 존재 아닙니까? 연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입니다. 그런 우리는 인생의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웨스터민스트 소요리문답은 분명하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나의 마음대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20절을 보시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만물이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이며 청지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하는 성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서 당신님과 연합시켜 주셨기 때문에 교회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백성은 이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영광을 올려드리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활하는 교회는 성전이기 때문에 너희 몸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몸 안에 성령께서 계시면서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을 알도록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통해 알도록 함으로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알고 생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있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몸으로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는 것을 생각하며 잘 판단하며 생활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이 무엇인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생각만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섬김의 예배를 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지상명령을 감당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성령의 전인 몸이 진심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한 몸이 되도록 힘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돌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몸을 받았다는 것은 주님을 위한 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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