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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4:3-13
강설날짜 2023-07-02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EqHyUimNAc

그리스도의 일꾼과 충성된 사역자의 마음(고전4:3-13)

 

지난주 지팡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꾼과 충성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의 은혜로 구원받은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께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전4:1-2절은 직분 자를 세울 때 그리고 헌신 예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본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본문을 인용하는 것이 바르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 다시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 1절을 보시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입니다. 어떤 분들은 1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면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입니다. 여기서도 어떤 분들은 충성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1절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우리입니다. 이것을 알 때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분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권면을 들을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이며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위해 섬기고 있는 사도 바울과 사역자들을 가리켜 “우리”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1절을 이렇게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아, 너희는 고린도 교회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마땅히 우리 즉 사도 바울과 일행들이(사역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비밀을 맡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은 자들은 성경의 의미를 알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니 사람들아, 너희는 사역자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 교회를 위해 권면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복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섬기는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누구나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교회가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꾼으로서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충성한 사역자였습니다. 이것을 알도록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람들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아, 너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밀을 알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 말씀에 연결된 본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과 충성된 사역자의 마음”이 무엇인지 강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일행들 즉 사역자들은 일꾼이요 충성된 섬김이라는 말한 후 오늘 본문에서 의무를 말씀하십니다. 의무라는 것은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충성된 일꾼을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왜 그런지 3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파당을 만들며 일꾼들을 판단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도 판단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자인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판단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쉽지 않지만 단번에 무너지기는 쉽습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파당을 만들며 판단하게 되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그러니 교회는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며 세속적으로 이익을 위해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온전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 사도 바울은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입니다. 우리말 번역본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왜냐하면”이 있습니다. 없어도 문맥을 읽어 보면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판단을 하시는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께 영광된 사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청지기의 사명도 마지막 날에 심판대에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심판대에서 삶에 대한 결산이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선한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5절에서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판단하는 태도에 빠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판단은 주님의 사역이니 맡기라고 하십니다. 단지 교회는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 판단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 아시게 할 것을 믿고 고린도 교회는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는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칭찬하신다는 것은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므로 칭찬하시며 영원한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사역자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형제들아”라고 하십니다. 형제들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니 너희는 판단하지 말라 입니다. 왜 그런지 6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교회는 판단 받지 않도록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은 완전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을 믿고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는 본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판단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칭찬받기 위해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구원의 감사 때문입니다. 죄수 중에 괴수라는 것을 알기에 과거를 기억하며 교회를 사랑한 일꾼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사역한 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과 이단과 사이비는 성경을 교묘하게 말하며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바른 말씀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파당이 있었습니다. 특정한 지도자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지도자들을 멸시하며 따르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일을 하지 말고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의 교만을 지적하며 왜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7절을 보시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 앞에 다 죄인입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누구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느 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다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주셨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휴식을 누리며 섬김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일을 시킬 때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맡깁니다. 마치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사용하며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파당이 만들어지며 분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지 않았다면 누가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사람은 분수를 알며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미지라도 하나님을 참된 신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받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자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위 그리고 우월함과 신분에 따라 구원받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5: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자랑하거나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지 않은 것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로 변질하였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이 8절입니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왕이신 하나님 없이 자신이 왕 노릇 하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이야기하며 사도 바울은 참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섬김의 생활을 하는 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왕의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참된 왕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왕왕 나는 왕자다. 하나님 나라의 나는 왕자다”를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겸손한 신앙생활을 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사람은 겸손보다는 자신을 자랑하며 높아지기 좋아합니다. 고린도 교회도 세상 사람처럼 다시 돌아갔습니다. 교회 안에서 높아지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비천한 모습으로 두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과 천사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를 가장 높은 신분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가장 비천하고 연약한 존재로 두셨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높여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무조건 잘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건 없는 성공으로 인도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도는 교회로부터 존경받고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9절을 읽어 보면 비천한 모습입니다. 복음을 위해 비천한 신분도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4:12-13절에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사역을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처럼 비천에 처하면서도 복음을 위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구경거리가 된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위한 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전도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합니까? 성공을 이야기합니다. 간증할 때도 세상 사람들처럼 성공한 분들만 간증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나오면 특별한 대우를 해 주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사형통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자 위에 군림하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과연 성경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랬다면 사도 바울은 자기 모습을 비천하게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도에 대한 것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입니다. 사도 바울을 “우리는”를 세 번 사용하면서 미련하고 약하며 비천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함에도 자기들만 지혜로운 자들인 것처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하기를 원하고 존귀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대조함으로 어떤 길이 하나님의 길인지 알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좁은 길 같지만 마지막 날에는 혼인 잔치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있는 그대로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자기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야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볼 때 어리석은 자입니다. 성공의 삶이어야 하는데 사도 바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 고난의 삶입니다. 육체적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정반대의 삶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따르며 주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배부르기를 원하고 부유 속에서 왕 노릇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는 교만했습니다. 이런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은 교회가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꾼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를 돌보는 일을 열심히 해 왔다고 합니다. 또한, 교회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생계를 이웃에게 그리고 성도에게 의존하지 아니하며 육체적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친절한 사역자의 길을 갔습니다. 사람은 육체적인 고통을 어느 정도 인내할 수 있지만, 이웃으로부터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면 힘들어합니다. 계속 고통을 받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기가 괴수라는 것을 알며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삶 속에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는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 이야기의 마무리를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어도 주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명 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초라한 모습이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고린도 교회처럼 부유하고 비천하지도 않고 왕처럼 누리고자 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사도만이 헌신한 삶이 아니라 성도는 사도처럼 헌신한 일꾼입니다. 그런데 일부 성도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기 뜻을 하나님께 관철하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런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심판대에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심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들은 주여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그때는 늦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통해 고린도 교회와 같은 나 자신이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한 결과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누구를 위한 사역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사역입니다. 자기 행복을 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사역은 멸망입니다. 사람을 위한 충성도 멸망입니다. 그런데도 사이비와 이단 등은 사람을 위한 충성을 하도록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대양 사건입니다. 사람을 위한 충성된 일꾼으로 만들다 보니 집단으로 자살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사도 바울처럼 성경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교회를 위한 유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비천하다 할지라도 교회를 위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된 삶이 무엇인지 알기에 비방을 당하며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박해 등을 받아도 오직 복음이 중요했습니다. 복음이 중요했던 이유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삶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함께한다는 삶은 이처럼 고독한 삶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독한 삶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교회를 위한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어도 오직 복음이 중요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주의 길의 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마음이었습니다.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욕당하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핍박당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참고, 비방을 당하지만 교회를 위해 권면하는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일꾼과 충성된 사역자의 의미”를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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