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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5:1-5
강설날짜 2023-07-16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Oo9jk9Z9Ec

부패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고전5:1-8)

 

지난주 강설은 “사도 바울처럼 고린도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입니다. 당연히 주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께서 창립하신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타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전도를 통해 영적으로 낳은 자녀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자기는 영적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버지이기에 아버지로서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며 교회를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많은 스승이 있지만 사도 바울과 같은 영적 아버지는 많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여튼,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초대 교회를 세워가는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사도 바울처럼 말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너 자신을 알라”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사도 바울은 성인군자를 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며 청지기였습니다. 자기의 삶을 잘 알기에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보냈겠다고 합니다. 디모데도 사도 바울이 영적으로 낳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전하는 복음은 사도 바울이 전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은 타락한 지혜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세상이 원하는 삶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구원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기 하는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알기에 세상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생활합니다. 그러니 타락한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한 편지를 읽으며 선택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지난주 강설을 기억한 지팡이 교회는 오늘 “부패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심각성을 알도록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문제들을 하나씩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5장에서 “음행”에 대한 것을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버지이기에 부패한 고린도 교회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지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것을 고전8장까지 말씀하십니다. 과거나 오늘날이든 교회는 죄와 싸워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와 같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구체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죄와 싸워야 하는 우리는 먼저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원어로 “정말로” 그리고 “실제로”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방인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아내는 진짜 엄마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계모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사용한 아내로 번역된 단어가 “계모”라는 말과 거의 뜻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불행한 사건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 고린도 지역을 알아야 합니다. 상업의 발달과 학문의 도시였지만, 고린도 지역은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문란한 도시였기 때문에 심각한 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조를 지키는 것을 추악의 증거”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지역의 신전은 창녀들을 두어 종교적 성적 행위를 했습니다. 그래도 이방인이라도 아버지의 아들이 계모 또는 첩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방인도 하지 않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화들짝 놀랐을 것이라 믿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을 통해 교회 안에서 일어난 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교회는 치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함에도 교회는 치리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치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마18장을 읽어보시면 죄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교회의 사랑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때까지 교회는 무기력했습니다. 이방인도 하지 않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2절에서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음행의 행실”에 대한 책망이면서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의 현실 즉 태도입니다. 죄를 죄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는 교만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교만해짐으로 인해 죄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치리가 있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치리를 통해 거룩한 교회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치리를 통해 죄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죄를 용납함으로 거룩한 교회가 무너지도록 했습니다. 교회의 왜곡된 마음은 영적 판단력을 상실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마18장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 부분은 홈페이지 강설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입니다. 오늘도 본문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왜냐하면... 때문에”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앞 절에 대한 사건의 진상을 결론 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비록 고린도 교회에 있지 않고 에베소 지역에 있지만 영적 아버지로서 올바른 판단이 무엇인지 가르치십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자에 대한 심판이 이미 선고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버지로서 고린도 교회를 위한 마음입니다. 비록 몸은 떠나서 있지만 영으로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치리회의 수장처럼 권위로 바르게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살아 숨을 쉬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치리를 사도 바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4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입니다. 교회를 위한 치리를 할 때 사도 바울이 보여 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위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치리를 하는 것은 돌이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영적 분별력으로 치리해야 합니다. 무능한 마음으로 그리고 독단적이거나 편협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치리해야 합니다. 돌이키면 죄를 용서하며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는 정화의 능력을 상실하면 안 됩니다.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멸망의 지름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참된 길 즉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이키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함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치리회로 모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기구로만 판단하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고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치리는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혜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판단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교회의 치리는 예수님의 권위로 모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위한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이 비록 고린도 교회의 치리회에 함께 하지 않지만 성경의 말씀대로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임에는 사도 바울도 영적 아버지로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하며 바른길이 무엇인가를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영과 고린도 교회가 하나가 되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할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모이는 교회는 바른 판단을 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영적 분별력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도 바울은 5절에서 모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사단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내어준다는 말씀입니다. 치리는 돌이키게 함으로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사단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교회에서 나가랍니다. 왜 이런 말을 한 것입니까? 치리회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교회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치리는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는 것이며 다른 성도를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신자들도 죄를 범한 자들과 같은 길로 인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도 죄를 지은 자들을 어떻게 합니까? 세상은 교도소로 보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이킬 수 있도록 합니다. 돌이키는 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도록 합니다. 세상의 법정과 교회의 치리회는 이처럼 다릅니다.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사단에게 가는 것입니다.

 

또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교회는 몸과 영혼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한 의미를 아무런 생각 없이 판단하면 육신이 죽음으로 영혼이 구원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아버지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심었고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터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5절을 읽어서 아시겠지만, 죄를 지은 신자를 교회에서 출교하는 것은 사단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도록 합니다. 바울은 돌이키지 아니하면 사단에게 내어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왜 바울이 이런 생각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바울이 구원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사단에게 넘겨준 자들이 교회 안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시적입니다. 돌이킬 수 있는 자임을 확신하기에 이런 말씀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육체를 멸함으로 다시 은혜 안으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영원한 죽음으로 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위한 목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출교당한 사람이 회개한 후 돌이킴으로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참으로 난해한 구절이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한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만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6절을 보시면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음행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돌이킬 수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회복하면 됩니다. 은사를 잘 사용하면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음행을 가만히 두면 마지 누룩처럼 퍼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의미의 누룩으로 사용된 의미가 아니라 음행을 의미합니다. 음행을 제거하지 못하면 교회의 거룩성을 보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불 순결한 것을 없애도록 촉구합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사도 바울의 마음입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이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순결성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나쁜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7절을 보시면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죄로 타락한 누룩을 제거할 때 거룩하고 순결이 있는 새 덩어리가 될 수 있습니다. 새 덩어리를 소유한 성도는 과거의 누룩을 제거한 교회입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출애굽 할 때 즉 유월절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출애굽 할 수 있도록 한 결정적인 것이 바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사건입니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교만한 자에게는 심판이었습니다. 그 심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애굽에서 처음 태어난 모든 것을 죽이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출애굽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사람의 장자, 가축의 첫 새끼까지 모두 죽이는 사건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순종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여 주심으로 교회는 더는 누룩 있는 떡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교회는 새 덩어리가 된 성도입니다. 그러나 죄로 침투한 묵은 누룩을 제거하지 못하면 교회는 순결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로 존재할 때 사단은 좋지 않은 누룩으로 침투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매정한 사람처럼 단호하게 대응하기를 촉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믿는 교회는 오직 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말씀을 통해 든든히 세워져 가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8절을 보시면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히시기 전에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셨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여 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몸과 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이 없는 새 명절을 주심으로 교회는 삶의 영역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생활을 합니다. 순결한 삶을 통해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합니다. 교회는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성찬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찬에 대한 것을 알고 싶다면 홈페이지에 있는 마태복음과 교회론 그리고 성찬의 의미를 참고해 주십시오.

 

바울은 부패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간절한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진실하며 정직한 마음으로 일관성 있게 고린도 교회가 돌이킬 수 있도록 섬기고 있습니다. 치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며 몸과 영혼이 구원받도록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함께 모여야 합니다.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으로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성도를 사랑하되 교회 안에 들어온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교회의 치리는 사람을 파멸하도록 그리고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은 무엇 때문에 있습니까?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참사랑을 아는 성도는 교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밀알처럼 작은 누룩도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도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무기력하며 부패하면 안 됩니다. 이방인도 하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은 치리해야 합니다. 교회가 교만하고 부패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음행해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계모와 첩 등을 이용해 자신의 욕정을 채워도 교회는 교만함으로 인해 방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죄와 교회가 생각하는 죄는 구별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교회는 늘 기억하며 바른길로 가야 합니다. 교회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혼자 새 하늘과 새 땅에 가기 위해 생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봉사만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숨기지 못하는 빛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알고 전도하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인생을 즐기며 자기 행복만을 추구하며 하나님 나라에 가기를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부패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참된 교회로 성장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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