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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7:17-24
강설날짜 2023-09-24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uW-yO0CPkE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다.(고전7:17-24)

 

오늘도 변함없이 구속함을 받은 교회가 “영과 진리”로 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 순서 중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교회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이 오늘날 교회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문제를 노회와 총회에서 해결하지도 않고 세상의 법정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분명히 성경은 교회에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종교개혁가들이 활동하던 시대는 교회가 타락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민하며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타락한 시대였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개혁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개혁했습니다. 이런 정신이 오늘날 교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위해 신앙고백과 교리를 통해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했던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입니다. 가장 타락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종교개혁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님의 교회를 위해 사역하는 일꾼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처럼 오늘날 일부 교회는 이단과 같은 마음으로 사역하면서도 가장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자신들은 성경적으로 목회하지 아니하며 스스로 좋은 교회라고 합니다. 이런 교회에 유혹되어 넘어가는 모습에 한숨이 나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벨직 신앙고백서 또는 벨기에 신앙고백서라고 하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제29항에서 “참교회의 특징과 거짓 교회와의 차이점”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성실하고 주의 깊게 참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한다고 믿는 바인데, 그 이유는 이 세상에 모든 이단과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온갖 이단들로부터 참 교회의 하나 됨이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교회의 표지가 무엇인지 알도록 했습니다. “순수한 복음(말씀 강설), 성례 그리고 권징의 정당한 집행”입니다. 이것을 보면 좋은 교회인지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의 표지가 바르게 시행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지팡이 교회는 “사도 바울의 부부관”을 강설로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욕을 절제할 수 없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5:14절을 통해 육신의 욕구는 결혼을 통해 정당하게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에게 주신 독신의 은사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되었든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으로 거룩한 섬김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 이혼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화합”하라고 하며 남편도 아내도 서로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는 이혼이 아니면 부부는 서로 한 몸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배우자가 헤어지기를 원하면 부부의 인연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남편 또는 아내만 믿는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이혼하지 말고 생활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배우자에게 복음이 심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며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 중에 부르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나눠주신 삶이 있습니다.

 

오늘은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다”라는 강설을 통해 기쁨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 힘은 세상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은사를 소명으로 주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주셨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17절을 보시면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나눠 주신 대로”는 7절의 은사와 연결되었습니다. 갑자기 나온 말이 아니라 성경을 볼 때 늘 문맥을 따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에 대해 투정 부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7절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의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믿음 생활하며 복음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할례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반복해서 17절, 20절,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주신 은혜로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서로 돕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시대는 이웃의 것도 내가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시대입니다. 초대 교회는 교회가 필요할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런 시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자는 부자의 삶이 있지만 그것으로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으로 섬겨야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삶을 살아도 하나님의 구원이 없다면 “거지 나사로”보다 못한 삶입니다. 구원에 있어 할례의 문제는 하든 안 하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외적인 할례로 구원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외적인 것보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 사람의 외모를 볼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의 지위와 권력 그리고 돈 등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종으로 살 때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기 위해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결혼 생활에서도 외적인 것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18절을 보시면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할례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언약이며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통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적인 할례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할례를 의미를 오해한 결과입니다. 오해하다 보니 초대 교회 안에서도 할례를 받지 못한 신자들이 할례를 받은 신자를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할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으며 순종하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서 형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심령이 가난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왜 그런지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삶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5:6절에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믿음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마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생활을 바꾸고 개선하며 신앙생활 한다고 해서 믿음이 좋아지는 것은 아님을 알도록 합니다. 외적인 것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외적인 할례를 하면 자동으로 구원받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녀가 물질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 아닙니까? 자녀의 마음보다 외적인 것이 관심이 많다면 과연 부모입니까? 단지 자녀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입니다. 이 말씀은 할례받았다고 자동으로 구원받은 것도 아니며 받지 않았다고 자동으로 거룩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이 더 중요합니다. 부부의 관계, 직업 그리고 재능 등의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무조건 외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사람이 계명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켜야 즉 행위로 드러내야 구원받는다면 누가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온전한 모든 순종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온전한 순종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원받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한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만 바라보는 삶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결국 성경이 원하는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거룩하게 되가 가는 것을 소망합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며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마음으로 일으키도록 합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지내야 합니다. 20절을 보시면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처한 형편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주권을 인정하며 삶 속에서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현재의 생활에서 어떻게 해서든 세상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가상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다른 종교처럼 “비나이다”하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주어진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르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거지 나사로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거지 나사로처럼 외적인 즉 거지처럼 생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진 삶 속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그리고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현재의 생활을 원망하며 다른 길을 선택하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삶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교회 안에서 신분과 생활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2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입니다. 교회 안에 신분과 생활의 차이로 인해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도 신분과 생활의 차이로 인해 직분을 쉽게 받기도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지위에 따라 높은 지위에 있는 신자를 좋아합니다. 그 사람과 친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이런 교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적 신분으로 인해 사람을 시기하고 무시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회적 신분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힘들었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요 자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피부가 달라도 국가가 달라도 신분이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한 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세상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2:9절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신분이 높든 낮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분이 높다고 구원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서 가장 연약한 거지 나사로에게 은혜를 주시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오히려 이런 나사로가 행복한 삶이 아닌지 고민해 보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22절에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입니다. 읽어보시면 극단적인 말씀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종으로 계속 있게 될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에는 조선시대처럼 그리고 고린도 교회처럼 종 즉 하인이 없습니다. 누구나 평등한 시민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시대 현실에 맞게 글을 썼습니다. 사회적 신분이 어떠하든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삶보다 구원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회심한 종도 있었습니다. 세상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종처럼 살더라도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세상의 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주께 속한 자유 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속한 종은 세상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3절에서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고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의 종으로 생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종으로 생활해야 하는 신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고귀한 피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벧전1:18-19절에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시대에는 사람을 돈으로 사고 팔기도 했습니다. 노예는 마치 물건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시대에 맞는 단어를 사용해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왕은 노예를 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고귀한 피로 우리를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였습니다. 이런 은혜를 입는 교회가 우리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생활 환경 때문에 신앙 생활하기 어렵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분들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가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4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도 바울과 같은 신분으로 생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삶이라면 아마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그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감사입니다. 누구나 사도 바울과 같은 삶이라면 감당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삶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함을 백성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일만 거룩한 삶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시간만 귀한 삶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삶 자체가 거룩한 삶입니다. 교회 안에서 교제해야만 거룩함이 있는 삶이 아닙니다. 거룩함의 현장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입니다. 땅끝은 저 멀리 있는 장소가 아니라 주어진 삶 속에서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곳이 땅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터전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현장입니다. 모이는 교회로서 거룩한 예배를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면서 흩어지는 교회로서 거룩한 섬김의 예배를 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삶은 삼위 하나님께 영광된 예배이며 삶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바로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터전입니다.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기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사역을 기억하며 교회는 삶으로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꼭 맞는 환경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적당한 환경을 주셨습니다. 환경을 핑계 대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욥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더 잘 안 후 환경을 핑계 대지 않고 오히려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오직 순종의 삶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혈의 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값을 지급하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예배하는 삶이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분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분쟁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교회이며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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