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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4:1-2
강설날짜 2023-06-25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hsEoadL1MJ8

그리스도의 일꾼과 충성의 참된 의미(고전4:1-2)

 

교회는 죄로 타락한 사람이 세우지 않았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없었다면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시지 않았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인 우리는 참된 구원의 의미를 알기에 예배당에 모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공로 주의가 아닌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주님 앞에 누가 나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성인군자가 윤리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행위 구원을 주장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독생자이기 때문에 교회인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위해 종교개혁가들은 행위 구원이 아닌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전해야 했던 이유는 성경이 말씀하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며 타락한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위해 헌신한 일꾼이었습니다. 순교하더라도 오직 복음을 위한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왜곡하지 않으며 오직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도 예수님처럼 말씀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성경의 말씀대로 전하기 위해 지난주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지식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어떠해야 합니까?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교회는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난주 말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시기하고 분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보다 자신이 더 중요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지식을 드러내며 자랑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언약의 열 가지 말씀”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구원받은 교회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 안에서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헛된 삶을 위해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이런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이 있는 분들은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멸망의 길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도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사모하는 해바라기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은 자신을 높이고자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위해 늘 헌신하는 종의 삶으로 생활합니다. 교회는 구원을 위한 사역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종입니다. 이것을 위해 사도 바울은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한 일꾼이었습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은 “그리스도의 일꾼과 충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람을 위한 모임이 되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충성된 군사와 같은 성도라는 것을 알게 하도록 오늘 본문을 통해 기록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위해 충성하는 일꾼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다 보니 사람을 위한 파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파당은 하나님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단체라고 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며 주인입니다. 교회 안에 주인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은 칭찬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칭찬도 받으면서 인정받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 보복하고 싶어 합니다. 바로 이런 교회가 고린도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당을 만들며 자신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주인은 한 분인데 파당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충성된 신분임을 명심하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사역자이며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과 연결된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일꾼은 비밀을 맡은 자이기 때문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으로 보내심으로 교회는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마귀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은 새로운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파당을 만들며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만큼 전해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므로 사람이 감당할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직분 자를 세울 때 그리고 헌신 예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본문입니다. 당연히 교회는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한 일꾼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교회를 위해 목회자를 위해 헌신하는 충성을 요구합니다. 과연 이것의 올바른 생각입니까? 예배하는 형제와 자매에게 충성을 요구합니다. 목회를 위해 목적에 따라 본문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단어는 사람과 우리입니다. 그렇지 않고 일꾼과 충성만 생각하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과 우리를 사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사람과 우리는 누구를 의미합니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사람을 위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우리는 그의 일행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를 위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고린도전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은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전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사람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우리 즉 나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려고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쉽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아 너희는 마땅히 사도 바울과 일행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분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우리가 즉 사도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우리이며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충성된 자로서 고린도 교회를 위해 권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우리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도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참된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아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일꾼이며 충성된 사역자이니 말씀을 듣고 돌이키라는 권면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고전3:9절이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라 믿습니다. 왜 그런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사도 바울이며 그 당시 복음을 전하는 사도 즉 사역자들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는 밭이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것을 복음의 말씀을 듣는 분들에게 너희는 일꾼이기 때문에 맡은 자는 충성하라고 안 됩니다.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일꾼이여 충성해야 하는 사명 자입니다. 헌신 예배나 직분 자를 세울 때 이 본문으로 다른 해석을 하면 안 됩니다. 다른 본문으로 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세속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교회를 위해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사람이며 교회입니다. 오늘날 시대에 사도 바울과 같은 사도는 없습니다. 사도는 신약 시대로 종결된 후 교부 시대라고 했습니다. 교부는 사도들로부터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 또는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목회자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한 비밀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삶으로 섬김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일꾼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일꾼의 의미보다 의미심장합니다. 사도 바울 당시 일꾼이라는 의미는 가장 낮은 신분입니다. 가장 낮은 신분은 노예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부르심은 받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사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일꾼에 이어 “맡은 자”를 사용합니다. 일꾼과 맡은 자는 서로 다른 신분입니다. 일꾼은 가장 낮은 노예를 의미하지만, 맡은 자는 정반대입니다. 맡은 자는 관리인, 청지기 등을 의미하는 신분으로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 신분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가장 낮은 신분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종으로 예속되어 이방인의 사도로서 권위 있는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사도 바울은 일꾼으로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청지기로 부르심 받은 사명을 위해 감당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24절에서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사도 바울이 전한 고린도 전서를 바르게 알며 하나님 나라의 낮은 신분으로서 맡겨진 일에 충실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세상의 학문과 지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종 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삶으로 예배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참된 행복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 그리고 물질이 많아도 참된 행복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참된 행복은 주 안에 있을 때입니다. 주 안에 있는 교회만이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백성만이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여 주시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해 2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자신의 권위와 겸손을 이야기한 후 청지기의 필수 조건은 충성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교회는 누구나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교회 성장을 위한 충성을 요구합니다. 이런 것은 사람을 위한 충성입니다. 오직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충성입니다. 충성된 일꾼은 오로지 신실한 마음으로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일꾼은 가장 낮은 신분이기 때문에 주인의 명령에 따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파당을 만들면 자신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든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당신님의 몸으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교회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알게 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1절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을 이해하며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을 위한 헌신과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단에 속은 자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의미를 모르며 교주에게 충성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함으로 이단과 사이비에 속아 넘어갑니다. 이런 시대에 고린도 전서는 과거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린도전서를 주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일꾼의 삶을 생활합니다. 그렇게 해야 나에게 보답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답이 오지 않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지만 반대로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성경의 말씀대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진 교회로서 예배하는 삶입니다. 사람의 부르심에 따라 순종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으로 사명을 청지기로서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교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신비를 알고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일꾼은 주인의 명령에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묵묵히 일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사람들의 판단이 들려옵니다. 좋은 소리면 듣기에 좋지만, 싫은 소리는 듣기에 거북합니다. 그래도 일꾼은 상처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고린도 교회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으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 안에 서로 주어진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면 됩니다. 잘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선과 악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각자에게 필요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많이 받은 달란트는 그만큼 열심히 사역해야 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역에 따라 하나님께서 달란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것도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일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직분 자를 세울 때 헌신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누구나 헌신 된 성도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헌신 된 성도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성도에게 계속 헌신하라고 합니다. 이미 헌신 된 성도에게 또 헌신하라고 하는 것을 바른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는 주인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일꾼이며 종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임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입니다. 교회는 사업장이 아닙니다. 그러니 교회를 장사의 소굴로 만들면 되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충성과 일꾼을 참된 의미를 알며 주의 길을 가고자 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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